- ‘화동페어’와 한국 현대미술의 캔버스 사(史)
회화의 배경에서 예술사적 주체로 이동한 캔버스
한국 현대미술 전시사에서 2025년의 ‘화동페어’는 하나의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전시의 주인공이 ‘작품’이 아니라, 작품의 토대가 되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작가들이 공동구매로 주문 제작한 더윤 캔버스를 실제 사용한 결과물과 사용기를 아카이빙한, 국내 최초의 ‘캔버스 사용 아카이브전’이다.
미술사에서 재료 전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20세기 초부터 물감 제조, 안료 채색, 지지체 제작 과정에 대한 산업·박물관 전시가 있었고, 1960~70년대 개념미술가들은 재료 그 자체를 작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현대미술에서 ‘회화 지지체로서의 캔버스’가 전시의 주체로 등장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화동페어’는 바로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회화의 ‘보이지 않는 손’을 드러내다
서양 회화사에서 캔버스는 르네상스 이후 목판화·프레스코를 대체하며 표준 지지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대다수 미술사 서술은 캔버스를 중립적이고 투명한 배경으로 취급했다. 이번 전시는 이 전통을 뒤집어, 캔버스를 작가와 함께 시간을 살아온 ‘감정의 피부’로 조명한다.
더윤 캔버스는 표면의 직조, 젯소층의 두께, 나무틀의 탄성까지 세심하게 설계되었으며, 시중 유통이 아닌 직접 유통 구조를 갖는다. 이는 산업품이 아니라 ‘작가 맞춤형 지지체’라는 점에서, 미술사 속 장인 제작 캔버스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화방 대신 개인 제작자에게 캔버스를 의뢰하던 방식과 유사한 것이다.
형태 실험과 지지체 변이
‘화동페어’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지점은 형태의 다양성이다. 직사각형이라는 근대 회화의 규범을 벗어나, 정사각형, 육면체, 원형, 하트, 반원, 삼각, 문자형, 기호형 등이 등장한다. 이는 20세기 중반 이후 미니멀리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회화에서 시도된 ‘Shape Canvas(형태 캔버스)’ 전통을 한국적 맥락에서 확장한 사례다.
이 변형은 단순한 조형 실험이 아니라, 작가-공간-감정의 관계가 지지체 위에서 구체화되는 과정이다. 미술사적으로는 캔버스가 ‘중립적 평면’에서 ‘의미 발생의 구조물’로 이동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재료 아카이빙의 미술사적 의미
이번 전시의 핵심은 ‘사용기’와 ‘작업 전후 비교’라는 기록적 장치다. 이는 보존과학, 복원학의 범위를 넘어, 재료의 ‘생애’를 예술사 서술 속에 포함시키는 작업이다.
서양 미술사에서 재료 분석은 주로 고전 명화의 기술 연구 차원에서 다뤄졌지만, 한국 현대미술에서는 아직 이러한 기록 문화가 미약했다. ‘화동페어’는 작가 개인의 경험담과 물리적 변화를 병렬 제시함으로써, 재료사(史)와 작가론을 동시에 구축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전시사 속에서의 위치
한국 현대미술 전시사에서 재료를 전면에 내세운 사례는 드물다. 1990년대 후반의 몇몇 실험 전시에서 매체 비평이 시도되었으나,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화동페어’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공동구매-사용-기록-전시로 이어지는 순환형 구조를 갖추고 있어, 장기적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재료사 기록 체계 구축에 기여할 수 있다.
‘화동페어’는 회화의 배경이던 캔버스를 미술사의 전면으로 불러낸다. 그 표면의 균열, 변색, 긁힘은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작가의 시간·공간·감정이 새겨진 역사다. 이 전시는 재료도 예술사적 기억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한국 현대미술의 ‘재료사’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음을 알린다. 화동페어는 1년에 두차례 개최되며, 작품촬영에서 도록제작까지 무료로 진행된다. 한국의 새로운 캔버스 ‘더윤캔버스가’ k-art의 브랜드로 뿌리내리고 있다.
-전시 정보-
• 전시명: 화동페어 – 더윤 캔버스 아카이브 전
• 장소: 금보성아트센터
• 1부 일정: 2025. 8. 1 ~ 8. 7
• 2부 일정: 2025. 8. 26 ~ 9. 1
• 주요 내용: 캔버스 사용기, 작업 전후 비교, 형태 실험 전시
• 참여 작가: 강은하, 공복자, 곽용자, 김경화, 김구연, 김미순, 김범휘, 김우정, 김은령, 김재옥, 김준영, 노경희, 문임숙, 박남희, 박혜영, 성예주, 손정순, 송수영, 심영희, 오영숙, 왕열, 원순호, 윤세준, 이설희, 이순희, 이인은, 자강조륜, 정슬기, 홍종구, 황은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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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의 배경에서 예술사적 주체로 이동한 캔버스
한국 현대미술 전시사에서 2025년의 ‘화동페어’는 하나의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전시의 주인공이 ‘작품’이 아니라, 작품의 토대가 되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금보성아트센터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작가들이 공동구매로 주문 제작한 더윤 캔버스를 실제 사용한 결과물과 사용기를 아카이빙한, 국내 최초의 ‘캔버스 사용 아카이브전’이다.
미술사에서 재료 전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20세기 초부터 물감 제조, 안료 채색, 지지체 제작 과정에 대한 산업·박물관 전시가 있었고, 1960~70년대 개념미술가들은 재료 그 자체를 작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현대미술에서 ‘회화 지지체로서의 캔버스’가 전시의 주체로 등장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화동페어’는 바로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회화의 ‘보이지 않는 손’을 드러내다
서양 회화사에서 캔버스는 르네상스 이후 목판화·프레스코를 대체하며 표준 지지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대다수 미술사 서술은 캔버스를 중립적이고 투명한 배경으로 취급했다. 이번 전시는 이 전통을 뒤집어, 캔버스를 작가와 함께 시간을 살아온 ‘감정의 피부’로 조명한다.
더윤 캔버스는 표면의 직조, 젯소층의 두께, 나무틀의 탄성까지 세심하게 설계되었으며, 시중 유통이 아닌 직접 유통 구조를 갖는다. 이는 산업품이 아니라 ‘작가 맞춤형 지지체’라는 점에서, 미술사 속 장인 제작 캔버스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화방 대신 개인 제작자에게 캔버스를 의뢰하던 방식과 유사한 것이다.
형태 실험과 지지체 변이
‘화동페어’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지점은 형태의 다양성이다. 직사각형이라는 근대 회화의 규범을 벗어나, 정사각형, 육면체, 원형, 하트, 반원, 삼각, 문자형, 기호형 등이 등장한다. 이는 20세기 중반 이후 미니멀리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회화에서 시도된 ‘Shape Canvas(형태 캔버스)’ 전통을 한국적 맥락에서 확장한 사례다.
이 변형은 단순한 조형 실험이 아니라, 작가-공간-감정의 관계가 지지체 위에서 구체화되는 과정이다. 미술사적으로는 캔버스가 ‘중립적 평면’에서 ‘의미 발생의 구조물’로 이동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재료 아카이빙의 미술사적 의미
이번 전시의 핵심은 ‘사용기’와 ‘작업 전후 비교’라는 기록적 장치다. 이는 보존과학, 복원학의 범위를 넘어, 재료의 ‘생애’를 예술사 서술 속에 포함시키는 작업이다.
서양 미술사에서 재료 분석은 주로 고전 명화의 기술 연구 차원에서 다뤄졌지만, 한국 현대미술에서는 아직 이러한 기록 문화가 미약했다. ‘화동페어’는 작가 개인의 경험담과 물리적 변화를 병렬 제시함으로써, 재료사(史)와 작가론을 동시에 구축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전시사 속에서의 위치
한국 현대미술 전시사에서 재료를 전면에 내세운 사례는 드물다. 1990년대 후반의 몇몇 실험 전시에서 매체 비평이 시도되었으나,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화동페어’는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공동구매-사용-기록-전시로 이어지는 순환형 구조를 갖추고 있어, 장기적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재료사 기록 체계 구축에 기여할 수 있다.
‘화동페어’는 회화의 배경이던 캔버스를 미술사의 전면으로 불러낸다. 그 표면의 균열, 변색, 긁힘은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작가의 시간·공간·감정이 새겨진 역사다. 이 전시는 재료도 예술사적 기억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한국 현대미술의 ‘재료사’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음을 알린다. 화동페어는 1년에 두차례 개최되며, 작품촬영에서 도록제작까지 무료로 진행된다. 한국의 새로운 캔버스 ‘더윤캔버스가’ k-art의 브랜드로 뿌리내리고 있다.
-전시 정보-
• 전시명: 화동페어 – 더윤 캔버스 아카이브 전
• 장소: 금보성아트센터
• 1부 일정: 2025. 8. 1 ~ 8. 7
• 2부 일정: 2025. 8. 26 ~ 9. 1
• 주요 내용: 캔버스 사용기, 작업 전후 비교, 형태 실험 전시
• 참여 작가: 강은하, 공복자, 곽용자, 김경화, 김구연, 김미순, 김범휘, 김우정, 김은령, 김재옥, 김준영, 노경희, 문임숙, 박남희, 박혜영, 성예주, 손정순, 송수영, 심영희, 오영숙, 왕열, 원순호, 윤세준, 이설희, 이순희, 이인은, 자강조륜, 정슬기, 홍종구, 황은수 등